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제목입니다.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예술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란 정도는 알고 있지요.
깨달음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리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로를 돌리는 것이지요..
그것은 뜻을 세워 돌리는 것입니다.
그냥 운에 맡기고 확률에 맡겨 돌리는 것이 아니어야합니다.
오직 그 한길 뿐임을 알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리는 겁니다.
미로에 갇혀 갈팡질팡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맬때..
돈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길잡이 할 수 없습니다.
큰 권력을 가진 이가 길잡이 할 수도 없습니다.
높은 명예를 가졌다고 길잡이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고 친구라 해서 그저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잘 아는 이웃이라해서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누가 길잡이해야 그 미로를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정답은 하나입니다. 나침반을 들고 있는 이를 따르는 것이지요..
그 미로의 지도를 가진 이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야지..
아무렇게나 진로를 돌려서는 허송세월만 보내게 되겠죠..
길잃은 양은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양치는 이를 따라 갑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나침반이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요....다른 방법은 없는것인가요..
아닙니다. 천문을 아는 이를 따라야겠지요..
하늘 별자리와 북극성을 보는 혜안있는 이를 따라 걸어야합니다.
그를 따라 걷는 것이 곧 북극성을 보고 걷는 것이지요..
그가 북극성을 일러줄때...북극성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또한 그와 우리가 서있는 자리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은 나침반을 품은 것이고.. 북극성을 찾은 것이고..미로의 지도를 얻은 것이지요..
그것이 정상에 선 경험입니다. 사람 영혼의 마지막 경계를 보고 온 경험입니다.
에베레스트와 케이투 정상을 밟지 않아도 우리는 그 정상을 미루어 짐작하듯이
누군가 보고해 주는 그 경계를 나침반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보는 자리에 따라 시간에 따라 하늘 별자리가 움직이니..북극성을 쫓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침반을 들고 있는 이도.. 시간과 세월에 묻혀 나침반 가진 것을 스스로 잊어버릴 수 있을테고..
때론 나침반을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도 있지요..
또한 미로의 지도를 애지중지 소중히 여기지 않다가..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 나침반이 되고..미로의 지도가 되고..북극성이 되는 방법 뿐이지요..
나침반을 영혼과 온몸으로 머금어야 합니다.
북극성을 쫓아가는 걸음에 흔들림 없는 굳센 심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좌표를 아는 사람이어야 자신있게 북북서로 진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지를 알아야 하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겠지요..
저는 늘 불편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세상 사람 다 똑같아..별 남자 있는 줄 아니..별 여자 있는 줄 아니..하고 사람들이 말할때..
그 말이 왜 그렇게 귀에 거슬리던지요.. 그런 말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저와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들이 청산박에도 넘쳐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