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돌, 때)
고종이 환갑이 넘어서 본 딸이라, 특별히 예뻐하는 자식이었다고 한다
한 일화로는 , 늦은 밤에 고종은
딸이 너무 보고싶어서 젖을 먹이던 변상궁의 방에 들어가자
놀란 변상궁은 고종에게 예의를 갖추고 얼른 일어나려 했으나
고종은 옹주가 깰 것을 염려하여
'괜찮다, 어서 옹주에게 계속 젖을 먹이도록 해라 난 옹주가
그대로 자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옛날, 임금 앞에서 유모가 임금 앞에서
들어누워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옹주에 대한 사랑이 임금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고종' 을 만들게 한 것 이다
' 나는 옹주가 그대로 자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덕수궁유치원시절)
고종에 대한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옹주가 6살 되던 해, 고종은 덕수궁에 유치원을 설치했고
옹주는 양반자제들과 같이 공부를 하였고 마음껏 뛰어놓았다
옹주는 남을 배려하던 마음이 깊었는데
한 급우가 놀다가 치마에 얼룩이 묻어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옹주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입던 치마와 바꿔입었다고 한다.
'걱정마, 내가 입던 치마와 네가 입던 치마를 바꿔입으면
아무도 얼룩이 묻은 것을 모를테고 너는 집에서 어머니께 혼나지 않아도 될 꺼야'
소학교 시절의 덕혜옹주
일본에 가기전에↑ 기차안에서찍은사진 ↑
(일본학교에서 수업받고있는 덕혜옹주 )
(신혼시절 덕혜옹주)
(덕혜옹주 결혼식사진)
덕혜옹주는 정신병이 발병해 도쿄의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되고,
남편과의 관계도 끝납니다.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는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덕혜옹주의 유모 변복동은
덕혜옹주가 탄 비행기를 향해 큰절을 올렸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덕혜옹주를 본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풀각시처럼 아름답던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상태에서 아래 사진을 보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가시리라고 믿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덕혜옹주의 모습)
부축을 받으며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가는 덕혜옹주.
이 때 순정효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린 덕혜옹주는
정신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황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궁중 예법대로 절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마치 정상인이 행동하는 듯이 하였으니깐..
(덕혜옹주 회갑날)
가장 왼쪽은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그녀 옆에 앉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저 할머니가... 바로...
'덕수궁의 꽃'이라고 불리던...
덕혜옹주...
(왼쪽에서 2번째가 덕혜옹주)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과 왕진 치료를 번갈아 하며 지내던 덕혜옹주.
그녀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며
상궁들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를 하거나, 상궁들과 화투를 치기도 했습니다.
노년의 덕혜옹주는 생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낙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구 씨가 보고 싶다" (얼마 전에 훙서한 회은황태손 이구, 이은 황태자의 아들.)
"나는 비전하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비전하는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를 가리킵니다)
"나는 낙선재 살고 싶어요"
덕혜옹주를 간병했던 이방자 여사는 병상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빨리 깨어나세요. 이대로는 너무나도 일생이 슬퍼요..."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77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덕수궁의 꽃으로 불리던 황녀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홍유릉 뒷편에 모셔집니다.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또 그녀 스스로도 정말 사랑했던
아버지 고종황제와 오빠 부부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의 곁으로...
"대한 덕혜옹주지묘(大韓 德惠翁主之墓)"